슬기로운 집밥생활, 오래간만에 외식 - 고지혈증 식단
둥근 달 구경을 마친 긴 추석연휴가 지나가고, 짧은 주중을 지나 또다시 직장인들에게 꿀맛같은 휴일이 찾아온 것도 잠시 다시 일상복귀다. 결혼 후에는 솔직히 추석연휴가 별로 설레지도 반갑지도 않다. 추석연휴를 끼고 곰돌과 둘이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밖엔 양가식구들 모임에 탐탁지 않은 스트레스가 살짝 밀려온다. 별로 하는 일이 많은 건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MBTI "E"형일지라도 시월드 사람들이 편하고 재미있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꿀벌은 "I"형이라 간헐적으로 동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긴 시간 완전히 편한 관계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연휴는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없었는데, 다른 이유로 답답한 시간이었다.
곰돌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곰돌에게도 꿀벌에게도 우울함과 속상함을 안겨주었다. 대학병원을 다니며 정밀검사를 했고, 안 좋은 결과를 들었으며, 피할 수 없는 치료를 앞두었다. 그리하여 이번 추석연휴는 곰돌의 결정으로 온전히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곳도 안 간다고 마냥 룰루랄라 편한 것이 아니라 마치 화를 안고 생활하는 듯한 답답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꿀벌은 주변 영향에 취약한 편이며 게다가 톡 하면 금방 깨지기 쉬운 유리 멘탈이다. 특히나 나의 힘으로 해결이 불가능할 때 더 그러하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야근을 해도 몸이 힘들 뿐 정신적으로 아주 강했는데, 내가 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땐 막중한 스트레스로 몸이 많이 상했다.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그랬다. 이미 망가져버린 곰돌의 건강을 내가 고칠 수는 없기에 스트레스가 되었고, 곁의 소중한 사람이 그러하니 가슴이 답답했던 것 같다. 앞으로의 관리 방향에 있어서도 조금씩 생각이 부딪혀 짜증이 났고, 내 몸마저 하루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어쨌든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고지혈증이 많은 원인 중 하나의 발단이 되어 생긴 병이니 식생활부터 완전 개선에 들어갔다.
슬기로운 고지혈증 식습관
1. 가공식품(라면, 냉동만두, 가공육, 스낵 등), 튀김류, 설탕과 유크림이 많이 들어간 디저트 종류는 완전히 끊는다.
2.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먹되, 저녁에는 과일 작은 5조각 이내로만 허용한다. (되도록 유기농, 친환경 신선제품 이용)
3. 기름기가 많은 육류(등심, 삼겹살)는 끊고 기름기가 적은 육류로 섭취하고, 되도록 육류보다는 생선을 먹는다.
4. 곡류는 흰쌀보다는 저당곡류(귀리,녹두,현미 등)를 같이 섞어먹고, 평소보다 섭취량을 반으로 줄인다.
5. 모든 음식은 되도록 최소한의 조미로 항상 저염 식사를 지향한다. (샐러드에 소스 X, 소금과 간장 등 짠 조미 줄이기)
6. 전체적으로 하루에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량을 높여 권장 몸무게 수준으로 체중을 꾸준히 감량한다.
채식을 좋아하는 꿀벌이 그동안 곰돌에게 제발 채소 좀 많이 먹고, 과자 및 아이스크림 좀 줄이라는 말은 완전 무시하고 잔소리로 생각하더니 이제는 식재료 하나하나 너무 까탈스럽게 굴어 스트레스가 쌓일 정도다. 돼지고기 소고기 먹을 때 맨날 참기름장 달라고 소리치던 곰돌이 이제는 요리할 때 포도씨유도 가급적 쓰지 말고 소량의 올리브유로만 조리하라고 한다. 간장도 첨가제가 많이 들어간다고 선별해서 쓰라고 한다. 기름기가 가장 적은 단백질인 닭가슴살도 이제는 좀 먹으라고 했더니 그래도 먹기 싫단다. 평소에 달걀은 그렇게 잘 먹으면서 닭고기는 사육장에서 항생제를 많이 써서 안된다나 뭐라나... 무항생제 동물복지 좋은 닭고기 쓰겠다고요... 본인이 좋아하는 데로 믿고 수용성은 떨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하도 이것저것 따지고 드니, 요리하고 있을 때 곰돌이 다가오면 감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마저 상하는 느낌이다.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식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꿀벌은 이전과는 다른 건강 식단을 이어나가는 것은 맞지만 너무 타이트하게 모든 재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금방 지쳐버릴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집밥 담당인 꿀벌은 이전과 다르게 장볼 때 채소 목록이 엄청 늘어났다. 이전에는 거의 꿀벌만을 위해 신선 채소를 구입했지만 이제 매일의 끼니에 항상 채소가 듬뿍 들어가니, 채소가 금방 소진되었다. 게다가 곰돌 출근 전 곰돌의 점심 도시락까지 싸야 한다. 아니, 저녁 도시락까지 추가되었다. 꿀벌은 급식세대라 도시락 2개씩 싸다니는 것도 안 했는데 나이 들어 자식도 아닌 남편 돌봄에 들어가다니ㅠ 밥 하기 싫은 날, 비상식량으로 사 둔 냉동식품도 가공식품도 이제는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관리를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꿀벌: 곰돌, 꿀벌보다 오래 살기로 약속 했잖아,,,
곰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거잖아,,,
꿀벌: 근데 좀 힘들어 ㅠㅜ
야채를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연어샐러드와 두부샐러드를 즐겨 먹고, 도시락도 싸준다. 샐러드나 곁들임에 활용가능한 야채피클이나 야채 마이네이드를 시간 날 때 만들어두면 유용하다.


국물요리는 이전보다 훨씬 저염으로 조리한다. 다양한 야채를 넣은 된장국, 샤브샤브(찜요리), 토마토김치찌개 등을 많이 먹고, 최소한의 조미만 하며 재료본연의 맛을 즐기도록 한다.



피자, 햄버거 등의 외식 배달은 완전히 끊었고, 외식 자체가 줄었다. 곰돌 검사결과가 나온 이후로 파스타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ㅠㅠ 꿀벌도 거의 동참하고 있으나, 곰돌 없을 때 냉동실에 남은 피자 등의 냉동식품을 먹기는 한다. 멀쩡한 음식을 버릴 수는 없잖아,,, ㅋ 내가 우울해하니 곰돌이 어느 날 산책 다녀오면서 꿀벌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꽈배기도 사 오고, 젤라또도 사 온다. 그럼 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곰돌, 고마워) 둘이 같이 산책을 나간 어느 날 오래간만에 외식을 했다. 역시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다. ㅎㅎ
